성북동

간송을 가기위한 짜깁기/링크.... From 중일앙보(본문),한국일보(샛글) 등등...

5월이면 장미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아까시나무 꽃을 생각하며 설렌다.

해마다 즐기는 은밀한 산책의 계절. 토요일 오전 길을 나선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분 출입구가 출발점이다.

성북동 방향 초입, 진학서관 옆 골목의 평양만두 전문점 하단(02-764-5744)에서 점심 같은 아침을 먹는다.

맑은 양지 육수의 만둣국은 맛이 깔끔해 반듯한 반가에서 대접을 받는 듯하다.

느릿느릿 길을 오르면 성북초등학교

아래 선잠단 터가 나온다. 조선시대,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다.

요즘도 지역축제로 매년 선잠제를 지낸다. 올해는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5월6일:이미 지난일)

성북초등학교 앞에 서면 서울성곽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성곽 위로 울타리를 두른 아까시나무들은 5월 중하순이면 가지마다 주렁주렁 꽃송이를 매단다.

북한산 쪽 풍경도 그림 같다. 멀리 보현봉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가 우뚝하고 그 앞으로 북악산 자락에는 신록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화폭마다 음양의 조화를 배려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보는 듯하다.

초등학교 옆에는 민족문화의 보물창고 간송미술관이 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전시회를 연다.

입장은 무료지만 전시 내용은 특급이다.

5월의 산책을 설레며 기다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15(日)일 개막하는 올 봄 전시는 김홍도 특별전. 단원의 작품 100여 점이 나온다고 한다. ☞단원의 붓끝따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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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그림 120여점이 선보이는 ‘단원대전’이 15~29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다. 10년 전 국립미술관에서 대규모 단원전을 개최했을 때도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 최대규모의 단원 그림전이다.

단원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외모가 수려하고 기상이 활달했던 단원은 7세부터 20세까지 문인 서화가 강세황 밑에서 그림과 글 을 배워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가가 됐다. 일찍이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는 29세에 영조와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고 여러 관직을 거쳐 충청도 연풍현감(延豊縣監)까지 지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신분이 급락한 그는 궁의 계약직 화가로 일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리는 등 평온치 못한 말년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작고연도가 분명치 않은 까닭이다.

이번 전시회는 단원 200주기로 기획됐으나 이것도 그림에서 나타난 행적이 1805년이어서 서거 연도를 그렇게 잡은 것일 뿐이다. 일부 미술사가들은 1806년까지도 그의 행적이 보인다는 주장을 한다. .

단원의 그림은 대개 간략하고 짜임새 있는 원형구도 속에 조선후기 서민들의 생활상들이 익살스럽게 표현돼 있으며, 곳곳에 사회풍자도 곁들여져 있다. 그가 단순히 풍속화만 잘 그린 것은 아니다.

신선도와 진경산수, 초상화, 남종화 등 회화 전반에 걸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특히 그의 산수화는 적절한 여백을 두고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 있는 구도법과, 형상을 집약해서 표현해내는 묘사력으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단원의 화풍은 동시대의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말년 작품으로 자신을 그린 듯한 매 사냥하는 풍속화와 금강산 산수화, 인물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있다.

화창한 늦봄에 젊은 선비가 춘정(春情)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타고 나섰다가 버드나무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하며 노니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그의 대표작 ‘마상청앵도(馬上廳鶯圖)’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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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나서면 초등학교 앞 큰길가에 구보다스시(02-744-2701)가 있다.

몇 주일씩 예약이 밀려 있는 일본요리 전문점이다.

식탁이 네 개뿐이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비밀로 숨겨두고 싶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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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기자란 직업도 망각한 채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 음식점이 있다. 한시간 남짓한 식사 시간 동안 내내 동행한 세 사람과 번갈아가며 감탄사를 연발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성북초등학교 초입에 있는 일식집 "구보다스시(02-744-2701)". 수 차례 전화 끝에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해 그 집을 찾았을 땐 네 사람 모두 한숨부터 내쉬었다. 입구가 가관이다. 셔터가 내려진 건물에 에어컨 냉각기가 삐쭉 나와 있다. 장사가 안돼 억지로 가정집으로 꾸린 모양새다. "스시"란 빨간 등(燈)을 못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엉거주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다타미방에 식탁이 달랑 3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식집.초밥집의 고급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종업원이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주방장 겸 주인이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받는다. 주방에선 주인의 어머니가 일을 돕는다고 한다.

메뉴판을 내밀며 주문하라는 태도가 영 아니다. "골라 보세요"가 아니라 "구경만 하세요"다. 1만원짜리 초밥부터 3만원짜리 특선메뉴까지 몇 가지가 있어 고민하고 있는데 대뜸 "2만원짜리로 하시죠"란다.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다.

전채요리 다섯가지(계란말이.살구.주꾸미구이.소라초회.오징어말이)가 식탁에 올랐다. "이야, 너무 귀엽다." 하나하나 앙증맞은 크기로 맞춤맞은 그릇에 담긴 모습에 한숨이 순식간에 감탄사로 바뀐다. 뒤이어 푸른 접시에 학 한마리가 "그려져" 나온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오징어를 회 떠서 정교하게 그려낸 것이다. 게다가 생와사비까지 곁들여진다. 다음은 뚜껑이 있는 질그릇이 신선로처럼 화덕에 담겨 나온다. 뚜껑을 열자 매콤한 와사비향이 풍긴다. "이런 음식도 있네." 바삭하게 잘 구워진 와사비 만두에 또 한번 놀란다.

일본 교토의 정원을 빼다 박은 한치 요리, 흥부네 제비집을 응용한 학꽁치회 등은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정도다. 파 튀김, 전복회, 관자회, 일본식 어묵은 틈틈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식사로는 고깔김밥을 직접 말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게맛살.장어구이.무순.계란말이.단무지 등을 순서대로 올려 말아 먹는다. 마지막으로 진한 장국에 메밀국수가 나오는데 일본의 맛과 너무 닮았다.

"이 값에 도저히 이런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이 집 주인은 음식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요리를 하면서 손님이랑 즐기는 겁니다." 일식집을 운영해 본 동행자의 평이다.

실제 이 집 주인은 귀여운 횡포(?)를 자주 부린다. 음식을 순서대로 내지 않고 빼먹기도 하며, 시간이 늦어지면 손님들에게 그만 가달라는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예약 손님수보다 인원이 많거나 적어도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미 5월 말까지 예약이 찬 상태라고. 그래도 자주 전화를 걸다보면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로 우연치않게 자리를 차지할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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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위로는 제주음식 전문점 섭지코지(02-3673-5600)가 있다.

둘 다 맛 좀 챙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집이다.


길 건너에 돼지불백으로 유명한 쌍다리 기사식당(02-743-0325)이 보인다.

기사식당에서 성곽 쪽으로 오르면 성 너머로 갈 수 있다.

오르다 보면 아까시 꽃 향기가 시나브로 짙어진다.

꼭대기에 닭 요리를 잘하는 성너머집(02-764-8571)이 있다.

아까시나무 꽃 그늘 야외석에서 성북동 쪽을 건너다보는 조망도 아름답다.

성을 넘으면 길은 성균관대 후문~창덕궁 뒤~중앙중학교 후문까지 이어진다.

아까시나무 숲은 여기서 꽃 터널을 이루고 향기에 몽롱해진 발걸음은 자꾸 지척거린다.

꽃은 끝나도 길은 이어진다.

인내심을 갖고 북촌 복판을 가르며 조금 더 걸으면

헌법재판소, 그 앞에 산책을 마무리할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 '로시니'가 있다. 로시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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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호텔이 아니면 많지 않은 정통 레스토랑 로시니는

2004년 7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앞서 7년간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동부이촌동에서 혹독한 수련을 마쳤다.

임대료가 갑자기 올라 사업을 접으려던 차에 단골손님이 제안을 했다.

자기 회사 사옥에 자리를 내줄 테니 한번 해 보라는 거다. 삼양사의 김윤 회장이었다.

주인 박장연(38)씨는 1986년 호텔신라 프랑스식당에서 조리사로 첫발을 뗐다.

88년 시드니 세계기능올림픽 요리부문 한국대표였던 그는 지금도 접시를 들고 홀을 누빈다.

마늘 콘소메 수프, 오징어먹물 스파게티,

로즈마리로 숙성시킨 소 안심 요리를 자신 있는 음식으로 꼽는다.

오징어먹물 스파게티에 대해 신두병 전 이탈리아 대사는

베네치아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주방장은 창업 때부터 주인과 호흡을 맞춰 왔고,

380가지의 와인(3만~540만원)을 관리하는 전담 매니저가 따로 있다.

주인 박씨는 첫 애를 임신한 부부가 식사하고 가면서

아기가 자라면 함께 오게 오래 하시라고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스파게티는 주문 때 말하면 양을 넉넉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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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문화산책 더 이어 보기-한국일보..
나무에 서서히 물이 오르며 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 봄맞이 나들이길,꼭 교외만 고집 말고 서울 도심의 조용한 동네 성북동으로 떠나보자. 근ㆍ현대 서울의 문화유적이 곳곳에 숨어 빛을 발하고 있다. 오밀조밀 골목길은 어른들에겐 추억을, 아파트 아이들에겐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북동 여행은 자가용보다 버스가 편하다. 85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바로옆 심우장길을 올라보자.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50㎙ 쯤 오르면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ㆍ1897~1944)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尋牛莊)을 만난다.

총독부를 마주보기 싫어 북향으로 앉혔다는 이 집은 만해 생전에 불을 땐적이 없다. ‘조선 땅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히 지내겠느냐’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마당 한켠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에서는옛 주인의 꿋꿋한 절개가 느껴진다.

골목을 나와 성북동길로 50㎙ 쯤 내려가면 덕수교회 안에 조선 근대 전통가옥 이재준가(李載濬家)가 있다. 마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갑부가 된 이종석이 1900년대

에 지은 건물로 나중에 소설가 이재준이 살았다. 183평의 터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안채, 행랑채가 회색벽돌 담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재준가 맞은편엔 이태준가(李太俊家)가 있다.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이 1933~46년 머물며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을 집필한 곳이다. 고풍스런 한옥 앞 작은 뜰과 상허가 쓰던 책장 등이 운치를 더한다.

4년 전부터 상허의 외종손녀 조상명(53)씨가 당호인 ‘수연산방(壽硯山房)’을 내걸고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옛 민가 정원의 맛을느껴보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교수, 문인도 많다”고 말했다.

성북초등학교 정문 옆 간송(澗松)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다. 고 전형필(全鎣弼) 선생이 1938년 설립한 이 미술관에는 훈민정음 등국보, 보물급 문화재 수십여점이 보관돼 있다. 아쉬운 건 봄, 가을 정기전시회때만 일반에 개방된다는 점. 조선시대 양잠의 신(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선잠단지(先蠶壇止)가 인근에 있다.

서울과학고 옆 서울 성곽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태조5년(1396년)에 쌓은 이 성곽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따라 이어진 한양도성(18㎞)의일부다. 성벽을 따라 약 2㎞가 벤치 등을 갖춘 산책길로 가꿔져 있다. 역사의 여운을 좇아 조금만 오르면 남쪽으로 도심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고반대편으론 북악산 품에 안긴 성북동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성북동에 숨겨진 진짜 보물은 성락원(城樂園). 조선 철종 시절 이조판서심상응(沈相應)의 별장이었으며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이 별궁으로사용했다. 4,358평의 널찍한 공간에 정원과 전통 가옥이 어우러진 성락원은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심 속의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아름드리 나무로 둘러싸인 연못 영벽지(影碧池), 노송이 지붕을 뚫고 서있는11칸 건물 송석정(松石亭) 등이 눈을 황홀케 한다. 사유지라 이제껏 ‘비밀화원’으로 숨겨져 있었으나 곧 일반에 개방될 것이라고. 성북구 관계자는 “국비 사업으로 성락원 복원ㆍ보수가 추진중”이라며 “이르면 올해말공사가 완료돼 일반인에게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고급 요정의 자취가 남아 있는 삼청각(三淸閣), 길상사(吉祥寺)도 발길을 잡아 끈다. 삼청각은 ‘예향’이란 음식점을 거쳐 2001년 전통문화공간으로 변신했고, 법정 스님에 시주된 대원각은 1997년 시민 선방(禪房)을 갖춘 길상사라는 사찰로 탈바꿈했다. 두곳 모두 잘 가꿔진 숲과전통 한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정릉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한국가구박물관이 5월말 개관을 목표로 공사중이다. 조선시대 장롱 탁자 반닫이 부엌가구 등 수천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성북동 여행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는 주변에 즐비한 맛집 때문이다.

돈까스, 돼지불고기, 칼국수 등 소문난 음식점들이 몰려있으니 출출한 속도 즐겁게 채울 수 있다.

by benfolds | 2009/10/04 17:05 | link | 트랙백 | 덧글(1)

계면활성제

인체에 대한 유해 정도에 따라

양이온성> 음이온성 > 양쪽성 > 비이온성
(bad)                                     (good)


by benfolds | 2009/10/04 14:24 | 트랙백 | 덧글(0)

배우기...

Yann Tiersen 과 Jon Brion

by benfolds | 2009/09/09 22:32 | 일기 | 트랙백 | 덧글(0)

안전한 화학 성분(유해성 0)

샴푸 - 데실글루코사이드 Decyl Glucoside, 소듐메칠코코이타우레이트 Sodium Methyl Cocoyl Taurate, 디소듐라우릴설포석시네이트 Disodium Lauryl Sulfosuccinate,

by benfolds | 2009/09/06 17:55 | 견해 | 트랙백 | 덧글(0)

작은 비누들...

나에게는 일회용 물품을 모으는 이상한 버릇이있다.
특히 여행하다가 혹은 무료 판촉물이나...서랍에 쌓아둔다.
가장 많은 것은 어제 보니 작은 비누들이었다.
생각해보면 포장된 작은 비누를 볼때마다 이건 여행할때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챙겨놓았던거 같다.
특히 작은 비누는 여행중에 모으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숙소에 비누가 비치되어있어, 항상 여행을 할때마나 비누가 늘어나는 거 같았다. 여행을 할때 다른 여행을 준비하며 비누 따위를 모으다니...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여행을 할때마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 몇몇과 텐트를 차에 넣어 가지고 모아둔 비누들을 써가며 여행을 가고 싶다는 희망이 있는거다.

by benfolds | 2009/09/02 11:26 | 일기 | 트랙백 | 덧글(0)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금 우리의 인간 사회가 초대형 유조선이 되었다 해도 그것은 묘하게도 부실한 선박이다. 선원들의 일부만이 엔진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나머지는 서로 물건을 사고 파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하늘을 바라보고 선체의 유체역학을 연구하면서 자기들끼리 즐거원한다. 함교에 있는 사람들은 해도도, 기상 예보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무슨 일이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 중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는 폭풍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이론을 지지하며, 설사 폭풍이 발생한다 해도 그 위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도가 높아지고 바닷새들이 도망가는 현상은 단지 신의 은총을 보여주는 징표일 뿐이다. 선박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모여드는 구름이 자신들의 운면과 관련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구명정이 열 명당 한 척뿐이라는 사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무도 조타수에게 키의 방향을 돌리는게 어떠냐고 충고하지 않는다. p.363~p.364'

환경의 변화에서 무관심한 대중이 많아진 이유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산업의 발달을 통한 풍요로움 때문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분업 때문인가? 

'도시는 항구적이고 이동이 불가능하므로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이동할 수 없고 인간이 관리하는 농경에 의존하는 도시로, 더 큰 거주지로 들어왔을때, 인간은 취약성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제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갑작스런 기후 변동에 취약해졌다. 번영과 붕괴의 중간지대란 없었다. 물론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하고 나일강변을 지배하는 파라오의 권력이 약화된 현상을 기후가 '유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사회가 아무리 허약하고,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이라 해도 그런 요소들은 드러내고 치명적인 결함으로 만들어 사회 혼란을 부르고 왕등을 망각 속에 빠뜨린 것은 바로 가뭄이었다.p.276'

인공적인 환경인 도시가 인간의 취약성을 스스로 만든 것일까? 인간의 이동성의 확보가 도시체계를 자연재해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발전시키는 것 중 어느것이 더 효과적인가?

'불운한 마야인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탓에 자신들의 눈앞에서 문명이 쓰러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p.344'

취약성이 한계는 어떻게 산출 될 것인가?


'기후압박은 완전한 붕괴를 초래하지 않아도 사회 재편과 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 14세기에 유럽은 도로, 항만, 방앗간 등 기초적인 하부구조만 갖춘 농촌 대륙이었다. 왕과 여왕이 자신의 왕국을 다스렸고, 인구가 많은 도시들은 늘 식량 부족의 위협에 시달렸다. 인구의 9할이 농사에 종사하는데도 대륙 전체가 그해 벌어 그해 먹고 사는 정도였다. 그러나 소빙하기의 위기는 농엽혁명을 불렀다...... 새로운 규모의 농업혁명과 효율적인 하부구조가 결합해 성장하는 도시와 농촌, 도시 인구를 먹여 살렸다. 프랑스의 사정은 사회 불안을 초래했고, 철학적 계몽주의를 낳았으며, 프랑스 대혁명을 유발했다. 이것은 또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이념에 영향을 주어 미국이 경제 산업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p.358~359'


저자는 인간이 기후변화에 적응할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그들의 이동성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는 토지가 사유화 되어 있고, 국가의 영토로 확정된 상황에서 인간의 기후에 대한 취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이러한 이동하고자 하는 요구는 전쟁과 갈등으로 인한 멸망만을 의미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이동성을 무한히 확보하려는 현 인류의 노력은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


'기후최적조건 - Altithermal'

by benfolds | 2009/08/11 16:56 | 견해 | 트랙백 | 덧글(0)

역시 비트는 중요해!!!

더 뮤지크를 듣고...둥두둥 둥두둥...

by benfolds | 2009/08/04 21:42 | 일기 | 트랙백 | 덧글(0)

여행가는 우리엄마

사랑하는 딸
안녕!
엄마 없다구 너무 '올레' 하는 것 같아 좋네
잘먹구 잘자구 알았지? 까꿍!

엄마가.


아~~ 나 부모님과 너무 오래산거 같다. 내년에는 꼭 나가리라!

by benfolds | 2009/08/01 20:52 | 일기 | 트랙백 | 덧글(0)

가위눌리기

종 종 밤에는...
하고싶은 일과 해야할 일과 하고 있는일에 짓눌려...
침대에 눌린것처럼 누워있을때가 있다.
컴퓨터는 켜있고, 불은 켜져있고, 책은 펴쳐있는데...그냥 침대에 머리를 쳐박고 눌려있다.

난 가위눌린적이 없는데...내식의 가위눌리기다.

by benfolds | 2009/07/29 01:06 | 일기 | 트랙백 | 덧글(0)

다져지기

힘든시기인거 같은데...용기는 더 나고, 힘도 더 난다.
가진것도 뭣도 없고 나이도 드는데...왜그런 걸까?

by benfolds | 2009/07/15 23:07 | 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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